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론 놀 (문단 편집) ==== 이후의 친미 쿠데타 ==== [[1970년]]에 [[시아누크]]가 의회에 의해 실각된 뒤 총리직이 유임되어 [[1970년]] [[3월]]에 [[군부]]와 [[미국]]의 친미 [[쿠데타]]를 일으켜 이후 초대 총리로 취임한다. [[반공]]을 목적으로 [[독재]] [[정치]]를 일삼았으며, [[크메르 루주]]와 캄보디아 내전을 벌였다. 그의 쿠데타 자체가 [[미국]]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[[북베트남]] 지원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, 정권 탈취 후는 격렬한 북베트남 캠페인을 실시해, [[크메르 공화국|캄보디아]]의 베트남계 주민을 박해했다. 플라스틱 소토, 네아크루, 타케오 등에서는 수용소에 격리당한 베트남계 주민의 집단[[학살]]이 일어나 그도 역시 [[폴 포트]], [[시아누크]]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명백한 [[독재자]]였다. 이 때문에 캄보디아의 베트남계 주민 50만 명 가운데, [[1970년]]부터 불과 한 해 동안, 20만 명이 [[베트남]]에 대량으로 귀환하였다. 이때 [[시아누크]]는 망명의 길에 올랐고, 이후 [[중국]]과 [[북한]]을 떠돌며 [[정권]]을 되찾는 노력을 했는데 이때 [[북한]]의 [[김일성]]과 각별한 우정 관계를 맺게 되었다. 정권을 잡은 론 놀은 [[미국]]의 비호 아래에서 온갖 [[호의호식]]을 일삼았고, 그의 [[부패]]와 [[막장]][[독재]]에 의해 [[크메르 공화국|캄보디아]]는 [[식량]] [[수출]]국에서 식량 [[수입]]국으로 전락했다.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반정부 세력인 [[크메르 루주]]의 세력은 "[[평화]]와 [[공평]], [[평등]]"이라는 목적 아래에 빠르게 성장하였고, 정부군과의 사이에 캄보디아 내전은 격화되었다. 론 놀은 미국에 지원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. [[1970년]] [[11월 18일]]에 [[리처드 닉슨|닉슨]] [[미국 대통령|대통령]]은 캄보디아 정부에 원조금 1억 5,500만 달러(8,500만 달러는 군사 원조)를 연방의회에 요구했다. [[베트남 전쟁]]에서 [[시아누크]]가 중립정책을 펼쳤던 반면 론 놀 정권은 [[베트콩]] 추방의 명목으로 닉슨 정권에 의지해 돈과 [[CIA]]의 지원을 받았지만, [[크메르 루주]]의 공세를 멈출 수는 없었다. 참고로 론 놀은 부하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부하들이 곧 졸았을 정도로 무능했기 때문에 축출 직전인 1975년 3월에는 미국의 외교 전문가들이 선정한 세계 최악의 정치 지도자 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.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aver?articleId=1975031700209203006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75-03-17&officeId=00020&pageNo=3&printNo=16448&publishType=00020|출처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